아리 애스터는 공포를 통해 감정을 해부하는 감독입니다. 그의 영화는 단순한 충격이 아닌, 정서의 깊이를 파고드는 심리적 구조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유전』과 『미드소마』는 각각 가족과 공동체를 배경으로, 애도와 집단 심리라는 정서를 서서히 붕괴시키며 관객의 감각을 침식시킵니다. 이 글은 아리 애스터가 어떻게 감정을 연출하고, 왜 그의 영화가 불편함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유도하는지를 살펴봅니다.
감정은 왜 불편해야 하는가: 서사의 긴장과 감정의 틈
아리 애스터의 영화는 공포 장르에 속하면서도, 전통적 장르 공식에서 벗어난 고유의 불편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불편함은 단순한 혐오감이나 충격을 통한 공포가 아니라, 감정이 끝까지 분해되지 못한 채 남겨진 긴장과 정지된 정서의 잔류에서 비롯됩니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감정을 완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의 표현과 현실 사이의 ‘틈’에서 길을 잃습니다.
이러한 틈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고통을 단지 관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틈에 머물게 하고 감정적으로 감염되게 하는 강력한 몰입 장치로 작동합니다. 『유전』에서 어머니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 『미드소마』에서 다니의 절규가 공동체에 의해 증폭되는 순간 등은 우리가 감정을 느끼는 통상적인 방식과 어긋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긋남은 오히려 감정을 더 크게 증폭시킵니다.
아리 애스터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감정을 선명하게 전달하는 대신, 그 사건이 발생하고도 감정이 따라오지 못하는 시간차를 이용하여 관객의 내면을 정서적으로 붕괴시킵니다. 이때 불편함은 감정의 부재가 아닌 과잉에서 비롯되며, 정서를 표현할 언어가 부재한 상태에서 관객은 인물의 신체와 울음, 침묵을 통해 감정을 해석하게 됩니다.
결국 애스터는 감정을 ‘경험’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으로 바꾸며, 관객에게 단순한 이입이 아닌 정서적 논리의 조각을 맞추는 불완전한 몰입을 유도합니다. 이처럼 감정의 완결을 거부하는 연출 방식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관객의 심리 깊은 곳에 불편함이라는 진동을 오래 남깁니다.
슬픔은 가족 안에서 형성된다: 『유전』의 애도 미학
『유전』(Hereditary)은 공포 영화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 내면은 깊은 애도와 상실의 심리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가장 친밀한 공간이 외려 가장 무서운 해체의 장이 되는 이 영화에서, 아리 애스터는 단순한 슬픔이 아닌, 말할 수 없는 감정의 결빙과 분열을 묘사합니다. 슬픔은 감정으로 발화되지 않고, 침묵과 오해, 단절된 대화 속에서 더욱 커집니다.
이 영화에서 어머니 애니는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동시에 어머니로서의 역할에도 균열을 겪습니다. 이중적 상실은 그녀를 감정의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이 감정의 미해결성은 곧 영화 전체의 불안감으로 전이됩니다. 슬픔은 애도의 언어가 실종된 상태에서 점점 공포로 진화하며, 관객은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결핍 자체에 휘말리게 됩니다.
애스터는 애도의 단계라는 전통적 심리 모델 대신, 슬픔이 어떻게 전염되고, 억압되고, 구조 속에서 괴물로 변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초자연적 존재나 악령의 개입은 이야기의 장식이자 은유일 뿐, 실질적으로 영화의 공포는 감정을 둘러싼 관계의 붕괴와 애도의 실패에서 비롯됩니다. 이로써 애스터는 슬픔을 단순한 반응이 아닌,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생성 장치’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가족이라는 틀은 감정을 보호하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이 가장 억압받는 장소로 기능합니다. 특히 영화 속 자녀와 부모 간의 단절은 슬픔이 사적 감정이 아니라, 유전처럼 전이되고 누적되는 감정적 유산임을 강조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애스터는 감정의 내러티브가 아니라, 감정의 유전학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왜 위협이 되는가: 『미드소마』의 집단 심리 연출
『미드소마』(Midsommar)는 공포 영화의 문법을 백색광과 낮의 정서로 바꿔놓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공동체는 단지 배경이 아니라, 감정이 ‘교정’되는 기제로 작용하며, 슬픔과 불안, 상실감이 외부의 논리에 의해 재구성되는 과정을 다룹니다. 아리 애스터는 주인공 다니의 감정이 공동체 내부에서 서서히 조작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통해,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타자화되기 쉬운지를 보여줍니다.
다니는 영화 초반 가족을 잃고도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 못합니다. 감정은 억눌리고 무시당하다가, 스웨덴 공동체 ‘하르가’에 도착하면서부터 점차 다른 방식의 감정 체계에 노출됩니다. 이 공동체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집단적으로 분출하며 서로의 감정을 모방하는 특이한 구조를 지닙니다. 울음이 하나의 소리가 아닌 ‘합창’이 되는 순간, 감정은 개인적 경험이 아닌 공동체적 체험으로 전환됩니다.
그러나 이 감정의 공유는 위로가 아니라, 서서히 주체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흡수하는 폭력의 형태로 기능합니다. 공동체는 다니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그 감정을 자신들의 의례 속에 흡수시키고, 결국 다니 스스로가 폭력의 한 축이 되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아리 애스터가 감정을 단순히 ‘내면적 상태’가 아니라, 외부 환경에 의해 구성되는 정치적 장치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결국 『미드소마』의 공포는 살인이나 피의 의식이 아니라, 감정이 선택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강요된다는 데 있습니다. 감정의 주체가 공동체에 의해 해체되는 과정 자체가 공포이며, 이 구조는 매우 세련되게 시각적 아름다움 속에서 펼쳐집니다. 아리 애스터는 이 모순된 구조를 통해 우리가 감정이라 부르는 것이 얼마나 사회적, 제도적, 나아가 신화적 기원에 닿아 있는지를 시사합니다.
결론: 불편함은 감정이 머무는 시간입니다
아리 애스터는 감정을 단지 이야기 속 반응이 아닌, 구조 속에서 생성되고 억압되며 파괴되는 역학적 현상으로 바라봅니다. 『유전』과 『미드소마』는 슬픔과 공포, 공동체와 상실이 서로 얽히는 감정의 실험실이며, 그 불편한 감정들은 화면을 떠나 관객의 감각 속에 잔류합니다.
그의 영화는 묻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정말 나의 것인가? 아니면 이미 오래전부터 유전되고 조작된 구조 속의 표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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