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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엔 항상 신이 있다 ( 구원, 죄책감, 침묵)

by eee100 2025. 4. 6.

마틴 스코세이지는 마피아 영화의 대가로 불리지만, 그가 만든 거의 모든 작품엔 종교적 긴장감과 신을 향한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사일런스》와 같은 명백한 종교 영화뿐 아니라,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아이리시맨》처럼 폭력과 죄로 얼룩진 세계를 그리는 영화에도 신, 구원, 죄의식이라는 키워드가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이 글에서는 스코세이지 영화 속에 자리 잡은 ‘신의 흔적’을 살펴보며, 그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구원받고 싶은 죄인들: 택시 드라이버부터 아이리시맨까지

마킨 스코세이지 영화

 

스코세이지의 인물들은 대부분 파괴적인 선택을 하는 인간들입니다. 그들은 폭력에 물들고, 외로움에 익숙하며, 종종 자신조차 통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이들이 항상 자기 안의 신을 찾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는 타락한 도시에서 스스로를 ‘심판자’로 설정하고, 순수한 존재를 구원하려 하지만 결국 더 큰 혼란에 빠집니다. 그의 분노는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신의 분노를 흉내 내려는 시도처럼 보입니다.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조직 안에서 신처럼 군림하려 하지만, 결국 무너지는 신의 자리를 대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아이리시맨》의 주인공은 평생 충성, 배신, 살인을 반복하며 살다가 마지막에는 침묵 속에서 고해성사 없는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장면은 기독교적 구원의 문턱에 선 인간이 느끼는 절망과 소망의 경계선 그 자체입니다.

 

스코세이지는 종교를 직접 말하지 않아도, 인물들의 죄책감, 침묵, 회피로 그것을 전달합니다. 그의 영화에서 신은 등장하지 않지만, 부재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역설적 방식으로 그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직접적인 신의 초상: 침묵과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

 

스코세이지는 1988년,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으로 신을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윌렘 대포가 연기한 예수는 우리가 아는 이상적인 구세주가 아니라, 두려움과 인간적인 갈등을 겪는 존재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가톨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스코세이지가 평생 붙들고 있는 질문—"신은 고통을 어떻게 보는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던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2016년작 《사일런스》는 이러한 주제를 더 심오하게 확장합니다. 일본의 기독교 박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신은 말하지 않습니다. 주인공 로드리게스 신부는 신의 침묵 앞에서 자신의 믿음과 사명의 정의를 거듭 의심합니다. 쿠로사와의 영화처럼 무거운 정적과 침묵이 이어지고, 관객은 스크린을 응시하면서도 마음속에서 “신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맞닥뜨립니다.

 

스코세이지는 이 영화들을 통해, 신은 모든 답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안겨주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종교영화는 교리적 설득이 아니라, 실존적 혼란의 은유에 가깝습니다.

신 없는 세상에서 신을 찍는다는 것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

 

스코세이지는 “나는 가톨릭을 떠날 수는 없지만, 가톨릭이 나를 떠난 적은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영화는 믿음을 가진 사람의 확신보다는, 믿고 싶어 하지만 믿지 못하는 사람의 갈망을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작품이 종교를 직접 다루지 않아도 언제나 신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유입니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폭력, 배신, 고독, 침묵은 모두 인간과 신 사이의 간극을 설명하는 메타포입니다. 그리고 그 간극에서 인물들은 선택을 강요받고, 고통을 감내하며, 때로는 파멸합니다. 스코세이지는 영화감독이기 전에 신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관찰하는 구도자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카메라를 들고 있습니다.

 

그에게 영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기도처럼 반복되는 내면의 기록입니다. 그의 인물들은 늘 죄를 짓지만, 그 죄 안에서 구원을 바라보며 절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신의 침묵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응답이 올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는 단순히 범죄와 폭력을 다루는 작품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늘 신에 대한 질문, 죄와 구원의 흔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카메라를 통해 고백하고, 침묵 속에서 기도하며, 죄인을 따라가며 관객에게 더 큰 사유를 권합니다. 그의 영화를 다시 본다면, 이제는 총성과 대사 뒤에 숨어 있는 신의 목소리와 부재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당신에게 스코세이지는 어떤 신을 보여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