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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리뷰 –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 없는 용사들

by eee100 2025. 4. 17.

전쟁 영화는 단지 총성과 전투 장면만을 그리는 장르가 아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했던 역사 속 인물들의 삶과 죽음을 되새기며, 오늘의 평화가 어떤 희생 위에 놓여 있는지를 묻는 작업이기도 하다. 2019년 개봉작 《장사리: 잊힌 영웅들》은 그런 면에서 매우 뜻깊은 영화다.

 

이 영화는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수행된 장사상륙작전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772명의 학도병들이 얼마나 무모하고 참혹한 작전에 투입되었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곽경택·김태훈 감독의 공동 연출, 김명민·최민호·김성철·김인권·메간 폭스 등 배우진의 강렬한 열연, 실화 기반의 서사 구조가 어우러진 이 작품은 단순한 전쟁 블록버스터가 아닌, ‘기억과 존중’을 위한 영화로 남는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1. 실화 기반 줄거리 – 17세 소년들이 던진 몸, 작전명 ‘장사’

1950년 9월,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서는 북한군의 주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교란 작전이 필요했다. 바로 그 작전이 장사상륙작전이다.

 

영화는 군사 훈련도 채 받지 못한 평균 나이 17세의 학도병 772명이 이 작전에 투입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명준 대위(김명민 분)는 이 작전의 지휘관으로, 학도병을 이끌고 경북 영덕군 장사리에 상륙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기상 악화, 정보 부족,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에 작전은 곧 위기에 빠진다.

 

보급은 끊기고, 무전은 끊기고, 구조는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단 하루만 버텨도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총탄 속에서 서로를 부축하며 싸운다. 그 누구도 그들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값진 시간을 그들은 전선에서 보내고 있었다.

2. 인물 중심의 서사 – 이름 없는 소년들의 이름을 되찾다

이 영화는 전쟁의 승패나 전략적 성과보다 ‘인물’에 집중한다. 주연 배우 김명민이 연기한 이명준 대위는 냉철한 지휘관이자 인간적인 고민을 안고 있는 캐릭터다. 명령을 내려야 하는 입장과, 아이들을 전장에 내보내야 하는 고뇌가 충돌하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최민호가 연기한 최성필은 평범한 고등학생 출신 학도병으로, 꿈과 우정을 품고 전장에 뛰어든다. 김성철이 맡은 이개태는 장난기 많은 성격이지만, 위기의 순간 가장 용감한 행동을 하는 인물이다. 이처럼 각각의 캐릭터는 실제 학도병들의 얼굴을 대신하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의 마음에 각인된다.

 

김인권이 연기한 류태석 중위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입체적 군인이다. 그는 싸워야 한다는 명분과 죽어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며, 영화에 묵직한 메시지를 더한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3. 연출과 영상 – 참혹함 대신 진실을 선택한 카메라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전쟁의 스펙터클보다 ‘현실의 참혹함’을 택한 영화다. 피비린내 나는 참호전과 조준되지 않은 총기의 두려움, 비 내리는 밤의 혼란함은 대규모 CG 대신 인물 중심의 카메라 워크로 구현된다.

 

초반 상륙 장면의 공포감, 산속에서 벌어지는 눈앞의 전투, 부상자들을 안고 달리는 병사들의 헐떡임까지 – 카메라는 거리를 두지 않고 정면에서 바라본다. 이는 관객에게 ‘현실감’을 주며, 극적 감정보다 ‘현장의 고통’을 전하고자 한 연출의 힘이다.

 

또한 영화 후반부, 실제 학도병의 사진과 함께 흐르는 내레이션은 이 작품이 단순한 픽션이 아님을 다시금 강조한다. 이들은 영화 속 등장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청춘들이었다.

4. 메시지 – ‘기억하지 않으면, 다시 반복된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전쟁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젊음을 소모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사람의 이름이 잊혀질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영화 제목 속 ‘잊혀진’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슬픔이 아닌 ‘질책’에 가깝다.

 

그리고 영화는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이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학도병이라는 이름은 전쟁의 수치이자, 동시에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들의 희생은 국가적 작전의 부속품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숭고한 선택이었다.

 

또한 이 영화는 젊은 세대에게 ‘기억’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과거의 희생이 단지 교과서 속 문장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그들을 ‘부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결론 – 전쟁 속의 인간, 역사 속의 청춘을 다시 보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전쟁 액션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결국엔 사람의 이야기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친구였던 학도병들이, 국가의 명령 아래 얼마나 외롭고 비참하게 싸웠는지를 묵묵히 보여준다.

 

상업성과 메시지를 절묘하게 조율하며, 교훈적이되 과장되지 않은 톤을 유지한 이 영화는 ‘보는 영화’이자 ‘기억하게 되는 영화’다. 이제 우리는 이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야 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일상은, 누군가의 무명의 죽음 위에 서 있다는 것을.